탤런트 한혜숙, 젊은 시절 미모와 사진, 결혼 안한 이유와 근황
지금 저희 여자 연예인 중에 얼굴이 예쁜 송혜교나 김태희 같은 미인 연예인들이 아름다운 미모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데 영화와 안방극장의 황금기였던 70년대 미인 여배우는 누구일까요?
70년대에도 얼굴이 예쁘기로 유명한 얼짱 여배우가 있었는데 70년대 대표적인 얼짱 여배우 한혜숙이 그 주인공입니다.
한혜숙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같은 여배우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청순가련한 얼굴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염하고 글래머즈한 매력을 지닌 여배우였습니다.
그래서 한혜숙은 특히 한국 남자들을 좋아했던 여배우였는데 70년대에는 한혜숙을 제외하고는 한국 연예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아주 매력적인 청순 글래머 여배우였습니다.한국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한혜숙은 70년대 가장 사랑스럽고 청순하며 요염한 여배우이자 탤런트였습니다
한혜숙은 70년대 164cm의 장신으로 호리호리한 글래머즈 몸매와 청순한 미모와 도도한 눈빛으로 TV 드라마로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70년대 대표적인 청순 글래머 미녀 탤런트였습니다.
●한혜숙 프로필
나이 - 1951년생, 현재나이 69세 - 164cm, 몸무게 51kg 5남매중장녀학력 - 덕성여자고등학교 졸업
1970년 mbc 방송국 데뷔, 1971년 kbs 방송국 데뷔 kbs 10기 탤런트 모집에 수석 합격 취미 - 등산 종교 - 불교
한혜숙은 '춘향전'에 '춘향'으로 선정될 만큼 청순한 미모를 지녀 70년대 TV 드라마는 물론 CF 광고모델로도 맹활약한 70년대 대표적인 미녀 여배우 아이콘이었습니다.최소 70년대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강은 신트로이카 3인방이 출연하기 전까지는 단연 한혜숙이 최고의 미녀 여배우로 인정받았어요.
70년대 초반에는 김자옥과 김영애 같은 인기 여성 탤런트도 함께 활동했는데 김자옥과 김영애, 그리고 한혜숙은 70년대 초반 트로이카 여배우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세 명의 인기 여배우 중 단연 최고 미인은 한혜숙이고 인기 면에서도 한혜숙이 가장 높았습니다.오늘은 7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 스타 한혜숙이 70, 80년대에 얼마나 대단한 미인이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화려한 연기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한혜숙의 결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혜숙은 1970년 MBC 2기 탤런트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이듬해 71년도에 다시 KBS 방송국 주연 탤런트 모집에 지원했는데 무려 350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한혜숙이 3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드라마는 '내 유망주'였지만, 한혜숙은 테렌트로 선정되자마자 단연 조연을 거치지 않고 주연급 테렌트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유메노키'는 한혜숙이 처음 출연한 드라마로 당시 미남배우로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한혜숙은 '유메노키'에서 청순하고 참신한 미모로 주인공인 여고생 장은옥 역을 잘 소화해 첫 드라마 출연으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그녀의 청순한 미모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혜숙은 1975년에 출연한 팔도강산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항헤슥가 주연으로 출연한 '꽃 피는 팔도 강산'은 당시 전 국민이 좋아하고 시청하는 최고 인기 높은 국민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항헤슥은 도도하고 콧대 높은 도시적인 미녀. 커리어 우먼 역을 잘 연기하면서 당대 최고의 인기 탤런트로서 높은 인기를 모았습니다.
당시 한혜숙과 함께 '꽃피는 팔도강산'에서 연인관계 배역을 맡은 유부남 민지환과 열애설이 나돌 정도로 이 드라마는 높은 인기와 함께 여러 가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한혜숙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1979년 KBS가 방영한 '토지'였습니다.한혜숙은 KBS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1대 최소희 역을 맡았고, '토지'의 여주인공 최소희의 원조는 한혜숙이었습니다.이 '토지'의 최서위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한혜숙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명실상부한 한국의 톱스타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한혜숙이 7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녀 탤런트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한혜숙이 70년대 안방극장에서 최고 인기 정상에 올랐고, 7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탤런트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한혜숙은 70, 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빅3의 작품 모두에 주인공으로 처음 출연하는 신기록을 세웠답니다."70년대 80대를 대표하는 큰 인기를 모았던 KBS의 대표적인 작품이 3편이며, '구미호', '춘향전', '토지'라는 작품이 그것입니다"
한혜숙은 71년 <고전시리즈 춘향전>에 KBS 방송사상 1대 춘향으로 출연, 79년 드라마 <토지>에서 1대 최소희로 열연했으며 한혜숙은 80년 전설의 고향 <구미호>에서 1대 구미호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들 빅3 작품은 70년대 뿐만 아니라 KBS 방송사상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레전드급 명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한혜숙은 이러한 레전드급 명작품 3개 작품에 모두 제1대 여주인공으로 당당히 출연하여 큰 명성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한혜숙을 3대 걸작의 원조 히로인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이후 한혜숙은 노다지, 황금의 탑, 천명 등의 명작에 출연해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관록파 배우로 활발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족보 상록수 영원한 유산 두 여인 같은 작품성 높은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TV 드라마에서는 성공했지만 이상하게도 영화에서는 별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영화 출연은 하지 않고 TV 드라마에만 매진하게 됩니다.
한혜숙은 70년대가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여성들의 로망인 화장품 광고에도 여러 번 출연하며 그녀의 청순요염한 미모를 한껏 뽐냈습니다예나 지금이나 화장품 광고는 모든 여자 탤런트가 찍고 싶어하는 최고의 로망이자 화장품 광고에 한번 나가면 톱스타가 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한혜숙은 이미 1971년도에 처음으로 아모레(하이톤) 화장품 CF광고를 찍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모레 화장품 광고 모델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한혜숙은 아모레 화장품 회사의 전속 모델로 발탁되어 3년간 CF 광고를 전속으로 촬영하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껏 과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혜숙은 당대 최고의 미인만이 맡을 수 있는 '춘향전'의 춘향과 '토지'의 서희 역, 아모레 화장품 전속 모델 등을 모두 모색하며 70년대 당시 당대 최고의 미녀 탤런트로 각광을 받았습니다.70년대 뿐만 아니라 전 시대를 통틀어 '춘향전'의 춘향과 '토지'의 서희 역, 그리고 아모레 화장품 전속 모델은 모든 여자 탤런트, 여배우 뿐만 아니라 여자 가수들 뿐만 아니라 여자 가수들이 최고로 맡고 싶어하는 모든 여자 연예인들의 최고의 로망인데 이 세 가지를 이미 70년대에 모두 섭렵했던 인물이 바로 한혜숙이고, 이 세 가지를 이미 70년대에 다 섭렵한 인물이 바로 한혜숙이고, 스펙이고, 스펙이고.
한혜숙은 TV 드라마에서는 크게 성공했지만 영화에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어요. 한혜숙은 족보 상록수 최후의 증인 같은 작품성 높은 명작에 출연했지만 그녀가 출연한 작품은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요.
그 후 한혜숙은 더 이상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데, 한혜숙이 더 이상 영화출연을 거절한 이유는 70,80년대 당시에는 여배우들이 옷을 벗는 호스티스 영화가 주류가 되었고, 한혜숙은 도도하면서도 보수적인 성격 때문에 옷을 벗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혜숙은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TV브라운관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고 매우 활발한 방송활동을 전개했습니다.
70년대 당시 한혜숙의 외모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동년배의 다른 여자 탤런트 중 한혜숙이 미모에 있어서는 원탑이었어요.
서구적이고 깔끔한 마스크에 그윽한 눈동자, 오똑한 코, 마치 조각도로 조각해 놓은 듯한 또렷한 생김새를 가진 그녀의 미모는 감히 만질 수 없는 시대적 아름다움이며, 또한 자존심 높고 도도한 성격에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닌 귀족 같은 풍체를 가진 한혜숙의 비주얼은 더 큰 신비감을 주면서 그 당시 많은 남성들의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여배우 한혜숙이었지만 그녀의 성격만큼은 꽤 자존심이 강하고 도도했다고 합니다.그녀의 거만한 기상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한혜숙은 주로 KBS에서 방송 활동을 했는데 80년대 초 한혜숙과 경비 사이에 벌어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80년대 초반 한혜숙은 방송을 위해 KBS 방송국에 갔는데 보안담당 경비원이 그녀의 출입을 막아버렸어요.80년대부터 KBS 방송국 규칙을 새로 바꿔 모든 출입자는 명찰을 착용해야 방송국 출입이 가능합니다.그런데 급하게 방송국에 들어온 한혜숙은 그만 명찰을 집에 두고 갈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한혜숙은 이름표 없이 그대로 방송국 문을 통해 들어가려 했지만 남자 경비가 그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그 남자 경비는 규정대로 명찰 패용 없이는 방송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한혜숙의 출입을 막은 거예요.한혜숙이 항의하며 다시 출입을 시도했고 다시 경비는 완강히 출입을 막았습니다.
경비의 완강한 태도에 화가 난 한혜숙은 그 경비원에게 너 내가 누군지 모르니?라며 자신이 신은 하이힐로 그 남자 경비원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한혜숙이 내리친 하이힐 발굽이 그대로 남자 경비원의 머리를 찍어 버렸고, 그 남자 경비원의 머리에서 붉은 피까지 흘러내렸고, 그 경비원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 한혜숙의 경비원 폭행사건은 한혜숙이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규정을 어겨가며 자신의 출입을 계속 주장했던 그의 보수적이고 도도한 성격을 잘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임에 틀림없습니다.한혜숙이 겉으로 드러나는 청순하고 예쁜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성격이 매우 도도하고 대쪽같은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70, 80년대를 아름다운 여배우이자 연기력이 뛰어난 연기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보낸 한혜숙은 90년대에도 꾸준히 TV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발한 연기활동을 해왔습니다"그리고 2000년대 중년의 나이에 한혜숙은 인어공주, 하늘이여, 보석비빔밥 같은 명작에 출연해 극의 재미를 높여주는 관록파 여배우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한혜숙은 중년기에 출연한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젊은 남녀 주인공을 제치고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한혜숙의 36년 이상의 긴 관록에서 느껴지는 노련하고 뛰어난 연기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혜숙의 뛰어난 연기력에 힘입어 '하늘이시여'는 40%라는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그리고 한혜숙은 2009년도 드라마 '보석비빔밥'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요.
● 한혜숙이 결혼했는지 결혼하지 않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한혜숙이 결혼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할 때까지 귀여웠던 한혜숙이 독신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한혜숙은 현재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답니다.70년대 최고의 미녀 여배우로 꼽혔던 당대의 꽃미남 스타가 60대 후반인 지금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인사는 과거에 그렇게 예뻤던 한혜숙이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을 리가 있나.하지만 그녀의 동료 연기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사실은 한혜숙은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는 게 정답이에요.
70, 80년대 청순 글래머로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 얼짱 톱스타로 큰 인기를 얻었던 한혜숙이 결혼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그녀는 당대 톱스타로서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인기와 명성을 얻고 돈도 벌 만큼 벌었는데 미모도 그렇게 탁월했던 그녀가 도대체 왜 결혼하지 못했는지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주변 지인들의 얘기를 종합해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 객관성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한혜숙은 2000년대 초 한 방송국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연기자로서 성공을 거뒀다고 확신하지만 한 여성으로서의 삶은 실패작이었다고 말했어요.한혜숙이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를 근거로 그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한혜숙은 자신이 60대 후반의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자신의 기구한 삶에 대해 깊은 회한과 후회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즉,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그녀는 내심 결혼하지 않은 것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일까요? 바로 결혼하지 않은 부분이잖아요?
그렇다면 70, 80년대에 대단한 미인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녀가 결혼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한혜숙은 서른 살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이때부터 그녀는 자기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가족의 부양을 맡아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혜숙의 아버지는 죽기 직전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해요.내가 죽으면 당신이 이 집의 가장이니 당신은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당신이 가장으로서 당신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한혜숙은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런 유언을 뼈저리게 새겨 평생 아버지의 유언을 그대로 실천했다고 합니다.한혜숙이 40년이 넘는 연기자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스캔들이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유언을 그녀가 얼마나 깊이 새기며 실천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혜숙 어머니는 경제력이 전혀 없는 이겼고, 그녀 밑에는 4명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당연히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그날부터 좋든 싫든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그리고 한혜숙은 연기생활을 하면서 어린 네 동생들을 열심히 돌봐주었고 마침내 막내동생을 대학까지 보내는 등 네 남동생 모두에 대한 뒷바라지를 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막내 동생은 대학을 졸업한 후 시집을 보냈다고 합니다. ~자신은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혼자 살면서도 4명의 여동생들은 모두 결혼시켜야 하는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정말 한혜숙이가 대단한 여성으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한혜숙이 아버지 대신 가장 일하면서, 4명의 여동생들을 돌보는 등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남자와 만나 연애를 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그녀가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제일 큰일을 하기 위해, 네 명의 남동생들을 부양하고 공부시키느라 연기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그녀는 남자나 사랑이야기에 관심조차 없이 살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한혜숙이 네 동생들을 돌보고 대학까지 보내며 뒷바라지에 몰두하는 바람에 자신이 결혼해야 할 시기를 놓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이처럼 한혜숙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희생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혜숙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 수 있게 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그녀의 신앙심은 매우 깊습니다.
한·헤스 구 종교적 신념 때문에 늘 자신의 인생을 깨끗이 하고 청렴결백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그녀의 이런 종교적 신념과 깨끗한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녀가 독신으로 살도록 스스로 자신에 대한 족쇄를 채운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전에 한혜숙이 한 번 연예를 한 적이 있대요.한혜숙 같은 절색의 미녀를 많은 남자들이 그냥 놔둔다면 정말 말도 안 돼요!한혜숙이 젊었을 때 한혜숙에게 미친 듯이 사귀던 남자가 하나 있었대요.경제력도 좋고, 집도 좋고, 배경도 좋고, 인물도 좋았던 그 남자는 한혜숙을 너무 끈질기게 따라다녔고, 그 남자의 끈질김 때문에 한혜숙은 그 남자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고 합니다.
한혜숙이가 그 남자에게 거절했는데 그 남자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다녀서 한혜숙은 그 남자를 경찰에 신고해서 다시는 자기 곁에 오지 못하도록 조치했대요.
그리고 한혜숙은 평생 세 번의 남자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완고하고 보수적인 한혜숙은 그 남자들하고 깨끗이 헤어지고 완전 정리를 끝냈다고 해요.
그 후 한혜숙은 남자를 만나기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고 해요.속세를 떠나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던 그녀가 신앙생활에 몰두한 것도 그가 남성을 멀리하고 홀로 살게 한 한 연결고리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한혜숙은 지인들에게 "내가 다시 태어났다면 여승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이 한마디야말로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종교에 빠져들게 되면 한 면만 보고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상당히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고 그 종교적 신념에 완전히 매몰되어 버려 다른 한 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즉, 남자를 만나는 것이나 연애를 하는 것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연애는 결혼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한혜숙이 바로 이런 종교적 신념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지금까지 한혜숙이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분석해 봤습니다.70년대 톱스타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당대의 미녀 톱 테렌트가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낯설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런 소문이 나돈 적도 있어요. 한혜숙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소문이 돌았어요.197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예쁜 여배우를 너무 좋아했고 예쁜 여배우가 박 대통령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그 예쁜 여배우 중에 한혜숙도 끼어있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1970년대 박 대통령이 너무 무서운 철권통치를 하며 독재정치를 펼쳤을 때여서 이런 소문이 나돌았던 거겠죠.그렇다고는 해도, 이러한 유언비어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개연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한혜숙의 최근 근황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 많아요.한혜숙은 2010년 드라마 '보석비빔밥'을 끝으로 더 이상 드라마 출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한혜숙의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계시고, 그녀는 어머니 간병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혜숙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다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고 해요.한혜숙이는 절에 다니면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정말 끝까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갈 생각인지 그녀의 생각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한혜숙은 몇 년 전에 방송에 출연해서 결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한혜숙은 '나는 지금도 남자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지금도 남자와 팔짱을 끼고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는 꿈을 꾸고 있다.'
한혜숙의 이 한마디를 들어보면 그녀가 영원히 독신으로 살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한혜숙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독신의 삶을 선택한 것 같지 않고 동생들의 보살핌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혼기를 놓치고 그대로 독신으로 머물러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중요한 건 한혜숙의 말대로 그녀는 아직도 남자와 만나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는 걸 꿈꾸고 있다는 거고, 당연히 결혼도 꿈꾸고 있다는 거죠.하지만 한혜숙의 나이가 69살이 되어버렸습니다.
한혜숙이 더 젊은 시절에 저런 낭만적인 꿈을 꾸었다면 그녀는 지금 토끼 같은 아이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을 겁니다.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70년대 최고의 미녀 스타가 6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다니 좀 아쉽습니다.
아직 젊은 시절 못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는 한혜숙이 다시 방송에 복귀해 멋지게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게시판을 통해 한혜숙을 비롯한 미모의 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며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여배우 3인조 한혜숙과 김천, 윤미라 세 여인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한혜숙은 이번 투고에서 소개하고, 다음은 윤미라와 김천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한혜숙과 김천, 윤미라는 법적으로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골드싱글 여성입니다.









